오늘은 국내 락 음악의 흥망성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한국 락 음악은 시대와 함께 변화해왔으며, 그 흐름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음악적 양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내 락 음악의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1960,70년대: 기반 다지기 국내 락 음악의 초석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놓였습니다. 이 기간에는 락 음악이 서서히 도입되면서 국내 음악계에 큰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때의 락 밴드들은 서구 음악의 영향을 받아 가요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때 '미녀'란 곡으로 유명한 신중현과 엽전들이란 밴드가 등장했던 시기이고, 기타리스트 신중현씨의 아들이 바로 훗날 전설의 락 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입니다. 그 외에도 유명했던 밴드 중에는 산울림, 송골매 등이 있습니다. 1982년 발매된 송골매 2집 타이틀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는 Funk한 락에 디스코를 가미한 곡으로 지금 들어도 세련된 곡입니다. 송골매는 최근에 (2022년) 재결성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네요.
1. 1980년대: 헤비 메탈 (Heavy Metal) 의 발전 1970년대 중반에 서양에서 들어온 헤비메탈 음악은 80년대 중반에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 했습니다. 1986년 한 해에만 대한민국 헤비 메탈 3대 밴드들이 모두 데뷔했는데, 그 주인공들이 바로 백두산, 부활, 시나위 입니다. 이 중에서 백두산이 가장 정통 헤비메탈에 가까우면서도 하드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수준이 외국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국내에서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세 밴드 중 가장 먼저 사라진 밴드이기도 하지요. 1987년 9월 13일 KBS에서 방송된 한강!젊은 그대여 록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지막 팀으로 참가했는데, 유튜브에 남아있는 영상을 보면 그냥 말이 필요없습니다. 그렇게 락의 전성기를 누리는가 싶었지만, 1987년 부활의 김태원이 대마초로 구속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락의 시대가 몰락하게 됩니다. 공중파에서도 락 음악에 대해 심의를 심하게 했으며, 방송불가 판정 받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겨우 살아남아서 지금까지도 현역인 밴드가 부활과 시나위입니다.
( 한강!젊은 그대여 록콘서트 - 백두산 무대 : https://youtu.be/6Ktq6unxFuI?si=KrXfe3_fT9a0PGSZ)
2. 1990년대: 확고한 아이덴티티의 탄생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국내 락 음악이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다양한 서브 장르가 등장하면서 국내 락 음악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락 음악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락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음악계의 혁명 같은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단지 한 장르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대에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정통 락을 이어오던 시나위와 부활이 있었지만, 그들과는 다른 실험적인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3집과 4집에서 1집의 댄스 음악의 느낌을 완전히 벗고, 락에서 힙합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음악을 보여줬는데, 곡 '시대유감'은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가 풀리면서 싱글앨범으로 새로 발매 되기도 했고, 걸그룹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으며, 곡 '필승'은 길거리 뮤비를 찍으면서 일부가 광고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서태지는 다름아닌 시나위의 베이스 출신이었고, 당시 보컬이던 김종서와 Free Style 이란 곡을 추후에 같이 작업하여 각자 앨범에 싣기도 했습니다. 넥스트 신해철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1990년대 말 2000년이후 : 디지털 시대의 도래 200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국내 락 음악도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음악의 유통이 다양해지면서 독립 밴드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다양한 음악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이 후 십수년간 정말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해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Girl, EvE, 채리필터, Y2K, 크라잉넛, 넬, 노브레인, 주주클럽, 조이박스, 러브홀릭, 버즈, 서문탁, 더더, 박기영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다양한 락 스타들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윤도현밴드나 자우림 정도 외에는 대중들에게 영향력 있게 장수하는 락 밴드는 많지 않았고, 장르쪽으로도 김경호, MC the Max 처럼 락 발라드쪽으로만 살아남고 점차 대세는 주로 힙합과 걸그룹, 보이그룹의 Kpop 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공중파 방송으로는 락 음악이 홍대를 위주로 인디밴드 음악이 성행하긴 했으나 이 분야도 새로운 시도나 하드한 음악 보다는 모던락 풍의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5년에 대형 악재가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일명 카우치 사건으로 불리는 방송사고로써 2005년 7월 30일, 문화방송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밴드 럭스와 함께 무대에 오른 20여명의 펑크인들 중 카우치 멤버 1명과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 1명이 바지를 벗고 하반신을 드러낸 장면이 7~8초간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밴드 음악이 다시 부흥하는 데에 7년이 걸렸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르를 떠나 밴드 음악 자체가 서서히 없어져 갔는데, 아무래도 밴드로 활동을 하려면 최종 수익을 1/N로 나눠야 하니 수익구조상 힘들었을 것입니다. 나중엔 보컬1인 체재로 가고 무대는 세션과함께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4. 마무리 시대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써의 락 음악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런 용도에서는 벗어난지 오래이고, 다른 수많은 장르들에 묻혀 새로운 시도를 못하고 사그러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락음악이라는 것이, 뭔가 억눌린 욕구를 해소하는 데에 강렬한 비트나 사운드가 적합하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흐름이 있을 때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 와중에도 탑밴드 같은 TV프로그램을 통해 브로큰발렌타인이나 게이트플라워즈 같은 밴드들의 존재를 알았을 때, 락 전성기가 다시 오지 않더라도 퇴보하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에도 잔나비나 혁오밴드 같은 색다른 밴드들이 등장했지만, 대세를 엎을 만한 인기는 얻지 못했고, 인구피라미드 구조 때문인지 최근에는 트로트가 대세가 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한 유튜버는 이제 장르로서의 락은 전성시대가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더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음악에 녹아서 재탄생 해 갈 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네요.